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트린 드 메디시스 (문단 편집) === 유년기 === [[이탈리아]] [[르네상스]]의 중심지였던 [[피렌체 공화국]]의 명문 [[메디치 가문]] 출신이었다. 당시 피렌체의 지도자인 [[로렌초 2세 데 메디치|로렌초 2세]][* "위대한 로렌초"로 알려진 로렌초 데 메디치의 장남 피에로의 아들이었다. 즉 '위대한 로렌초'의 손자였다.]와 오베르뉴 백작의 차녀 마들렌 드 라 투르 도베르뉴[* 마들렌의 어머니가 [[부르봉 가문]] 방계 방돔 백작의 딸인 잔 드 부르봉-방돔이며, 프랑스 국왕 [[프랑수아 1세]]의 외할머니가 되는 마르그리트는 부르봉 공작의 딸이었으므로 마들렌은 프랑수아 1세와 먼 친척이었다.] 사이에서 태어났다. 그녀는 '''메디치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'''였으나, 태어난 지 1개월도 되지 않아서 부모가 모두 사망했다. 아버지 로렌초 2세가 우르비노 공작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우르비노 여공작이었고, 당시 갓난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자신이 어떤 남자와 결혼하냐에 따라 당시 모든 국가들이 탐내고 있었던 [[이탈리아 반도]]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었기에 생애 초기에는 그야말로 금지옥엽이었다. 그러나 카트린을 보호하고 있었던 작은 할아버지 [[교황]] [[레오 10세]]가 사망하자 메디치 가문의 세력은 일시적으로 위축되었고, 그 와중에 카트린은 우르비노 공작령과 피렌체의 상속인 자격을 잃었다. 지도자를 잃은 메디치 가문이 휘청대고 있는 동안 메디치 가문을 약화시키고자 했던 신임 교황 [[하드리아노 6세]]가, 우르비노 공작령과 피렌체의 실권을 당시 세 살에 불과했던 어린 카트린에게서 몰수했기 때문이다. 짧은 [[하드리아노 6세]]의 치세가 끝난 후, [[메디치 가문]]의 일원이며 로렌초 '일 마니피코'('위대한')의 동생 줄리아노의 서자였던 줄리오 데 메디치가 [[교황]] [[클레멘스 7세]]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